PROGRAM

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

The Duke Ellington Orchestra

정통 재즈의 거목, 듀크 엘링턴이 1920년대에 만든 역사적인 오케스트라

아름답고 깊이 있는 풀 오케스트레이션 재즈를 느낄 수 있는 무대

작곡가로써 재즈 역사상 가장 많은 곡을 만든 듀크 엘링턴은 당대 최고이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재즈 작곡가로 남아있다. 재즈 오케스트라의 시초가 된 듀크 엘링턴의 작곡가 그의 오케스트라는 중요한 빅 밴드 중에서 직간접적으로 듀크 엘링턴의 영향을 받지 않은 밴드는 없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친 역사적인 존재였다. 듀크 엘링턴이 도입하고, 그 후에 다른 오케스트라와 연주자가 채택한 혁신과 테크닉의 내용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재즈 역사에 큰 획을 그었고, 앙상블 사운드와 재즈 악기 편성에 연관된 모든 것은 거의 모두 듀크 엘링턴에게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그의 위대한 업적을 인정받아 1999년에는 퓰리처 상을 수상했으며, 타임지의 커버 사진을 장식한 몇 안되는 재즈 뮤지션 중 한명이다.

듀크 엘링턴은 1923년에 'Washingtonians'라는 오케스트라를 구성해 뉴욕을 중심으로 공연활동을 시작하였고, 할렘가의 코튼 클럽에서 정기공연을 하면서부터 최고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의 오케스트라는 오랫동안 단원의 이동이나 불화가 없어 약 50여년간 명문 빅밴드로 성장해 갈 수 있었고, 오케스트라 단원 모두가 뛰어난 실력을 가진 동시에 서로의 연주를 돋보이게 하는 놀라운 합과 흐름을 가지고 있었다. 1930년대에는 당시 영국왕실이 열렬한 팬일 정도로, 주로 상류층 팬들을 확보하면서 영국을 비롯한 전 유럽을 순회하는 등 재즈를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였다. 5~60년대 빅밴드의 인기가 쇠퇴했을 때도 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만은 화려한 서포트를 받으며 재즈팬들을 사로잡았다.

듀크 엘링턴은 1974년에 폐암으로 눈을 감는 날까지 퍼포머이자 작곡가로 왕성한 활동을 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는 밴드의 매니저이자 트럼펫 연주자였던 그의 아들, 머서 엘링턴 (Mercer Ellington)이 아버지의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강렬한 연주를 선보이는 투어를 계속해 나가며 듀크 엘링턴의 발자국을 이어 나갔다. 그의 아들 머서 엘링턴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는, 그의 아들이자 듀크 엘링턴의 손자인 폴 엘링턴 (Paul Ellington) 이 리더 자리를 이어 받아 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를 이어나가며, 계속해서 수준 높고 화려한 공연을 세계 각국의 재즈 팬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역사적인 재즈 오케스트라인 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가 서울재즈페스티벌을 통해 가질 특별한 첫 내한은 재즈 팬이라면 절대로 놓쳐서는 안될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